대행사 약속과 달리 한인회사서 막일, 항의하니 또 돈 요구
전문가 “문화교류 비자로 해외취업 보내는 정책에 문제” 비판 [저작권 한국일보] 2017년 미국 문화교류방문(J1)비자 국가별 취득 인원/ 강준구 기자/2018-11-06(한국일보)
올해 초 인턴직 취직을 위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로 향한 이영희(가명ㆍ24)씨는 출근 첫날부터 크게 낙담했다. 애초에 이씨는 미국내 인턴 취업을 가능케 해주는 J1비자 발급 국내 에이전시(대행사)에 450만원을 지불하고 가발회사에서 일할 예정이었다. 회사 대표와 영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합격’ 메시지까지 받아놔 기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던 이씨. 하지만 정작 그는 미국 입국 후 단 하루도 가발회사에서 일할 수 없었다. 대신 이씨를 맞은 곳은 가발회사 대표의 친지가 운영하는 배송대행 회사였다. “배송대행 회사에서 3개월을 일하다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어 비자 대행사에 이메일을 보냈어요. 그런데 ‘직장을 옮기려면 130만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는 형식적인 답만 받았어요.” 영어공부를 하며 원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미국 정착을 내심 꿈꿨던 그의 희망은 이렇게 무너졌다. 터무니없이 비싼 대행료. 약속과 다른 허드렛일을 시키는 직장. 이를 바로잡으려 하니 재차 요구하는 거금. 취업난에 내몰려 해외로 눈을 돌린 우리 구직자들이 마주해야 하는 처참한 현실이다.
국내 디자인업체에서 일하며 과중한 업무와 저임금으로 시달려온 서모(24)씨도 미국 취업에 나섰다가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경력을 살려 미국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미국의 워킹 홀리데이 비자’라 불리는 J1비자 취득 과정을 알아봤지만 발급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행사마다 진행 비용으로 적게는 400만원에서 많게는 650만원까지 목돈을 요구했다.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 혼자 수속 진행을 해 보려고 했지만, 대행사가 대뜸 혼자 준비해서는 발급받을 수 없다고 해 포기했어요.” 결국 서씨는 직장을 다니며 힘들게 모은 650만원을 국내 대행사에 내주고서야 1년 6개월간 일할 수 있는 J1비자를 손에 쥐었다.
◇한 해 J1비자로 2,600여명 미국 취업문화교류 또는 교육 목적으로 방문을 허용(1년~1년 6개월)해주는 J1비자를 받아 미국 취업(인턴 및 훈련생 업무)길로 나서는 젊은이가 급증하지만, 이를 대행하는 업체의 장삿속과 허술한 사후관리로 인해 취업 준비생들의 아메리칸 드림이 짓밟히고 있다.
일정 자격 조건을 갖추면 미국내 제한적 취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 J1비자 인턴십 취업프로그램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국내 취업준비생들의 증가세가 뚜렷하다. 미국 국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인턴직 취업(최대 1년)을 위해 2,342명이 J1비자를 받아 출국했고, 18개월까지 일할 수 있는 훈련생(Traineeㆍ트레이니) 자격으로는 314명이 나갔다. J1비자로 미국에 입국하는 전체 규모 중 인턴직 취업자는 한국이 독일, 필리핀, 프랑스, 캐나다에 이어 세계 5위 수준, 훈련생은 8위에 해당한다.
국내 해외 취업 대행사 관계자는 “국내 취업이 힘들기도 하고, 한국을 떠나려는 청년들이 많은 데다 정부에서 해외 취업을 지원해주다 보니 해외 인턴직을 원하는 구직자가 늘고 있다”라며 “유럽 일자리는 정보가 부족하고 호주와 뉴질랜드는 농장과 공장만 많고 캐나다는 일자리가 적은 탓에 지난 10년간 미국 인턴 지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비자대행 600만원…내역은 대외비(?)하지만 서씨처럼 J1비자 취득을 위해 대행사를 거치면서 보통 5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한국일보가 접촉한 미국 J1비자 인턴ㆍ훈련생 과정 경험자 7명 중 정부 지원금을 받는 경우라도 약 400만원, 그렇지 않다면 650만원까지 대행사에 지불했다. 이러한 고비용에 대해 대행사들은 “J1 비자 발급 절차가 복잡하고 취업자 신분을 보장하는 미 국무부 산하 스폰서재단이 가져가는 비용이 많아서다”라고 설명했다.
대행사를 거쳐도 약 3~4개월이 걸리는 비자 발급 절차는 개인이 혼자 진행한다면 복잡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많은 청년이 비싼 비용에도 미국 취업을 고려하는 첫 단계부터 대행사를 찾는다. 하지만 개인 절차 진행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개인이 직접 미국 스폰서 재단에 가입해 절차 진행을 할 수 있지만, 대행사들은 지원자에게 이를 숨기고 거짓 정보까지 알려주곤 한다.
국내 H대행사에 650만원가량을 내고 J1비자 수속을 진행한 서씨는 “원래 혼자 진행을 하려 했는데, 대행사는 스폰서 재단이 개인에겐 문화교류비자 방문허가서(DS-2019)를 발급해주지 않는다며 대행사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H대행사는 “개인이 미국 스폰서 재단을 직접 접촉해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라며 “차이가 있다면 대행사는 관련 전문지식이 더 쌓여 서류 발급이 더 수월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원자들은 비싼 돈을 내면서도 수속 비용이 어떤 명목으로 쓰이는지 안내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J1비자로 미 캘리포니아주로 출국한 박모(27)씨는 수속 비용으로 국내의 대행사에 총 670만원을 냈다. 박씨는 대행사에 비용 내용을 요구했지만 그가 받은 것은 '입금확인증' 한 장뿐이었다. “입금 확인증에는 수속비 50만원에 프로그램비로 5,491달러가 결제됐다고 하면서 프로그램비 포함 내역만 나열돼 있었어요. 아무도 이런 내용을 요구한 적이 없어 대행사측에선 정리를 해놓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대행사가 밝혀온 미국 J1비자 수속 비용은 인턴의 경우 4,900달러(약 550만원), 훈련생은 5,500달러(약 620만원)다. 여기에는 일자리 찾기 수수료, 훈련ㆍ연수배치계획서인 DS7002(TIPP) 작성 및 서류검토, 미 국무부 재단 DS2019 심사 및 발급, 비자 기간의 상해ㆍ질병 보험, SEVIS(Student and Exchange Visitor Information Systemㆍ학생 및 교환방문자 정보시스템), 미 국무부 재단의 작업장 방문 비용이 포함돼 있다. 박씨의 미국 스폰서 재단인 I업체의 홈페이지에는 1년 인턴 수속 비용으로 2,800달러가 책정돼 있다. 일자리 찾기 수수료, DS7002 작성 및 서류검토 비용 약 2,000달러(약 228만원)와 한화로 결제한 수속비 50만원을 국내ㆍ미국 대행사가 가져가는 비용으로 추산할 수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박모씨가 미국J1비자발급위한 대행사비용. 송정근 기자/2018-11-06(한국일보)◇최저시급에 예상과 다른 ‘창고일’만하지만 비싼 비용과 시간을 들여 미국에 가서도 원하는 일자리와 동떨어진 곳으로 보내지는 확률이 높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 동포들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한국어로 말하며 최저시급 수준의 급여를 받으면서 일하게 된다. 영어공부는 실상 불가능하며 한 달을 빠듯하게 꾸려나가기도 힘들다.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는 서씨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최저시급에 가까운 시간당 13달러 50센트를 받으며 주 40시간 근무한다.
대행사 소개와 달리 엉뚱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이영희씨는 “미국 취업을 준비하며 들인 시간과 돈이 너무나 아깝다”고 말한다. 학교의 산학협력단이 연수기관으로 선정된 K-Move(정부지원 해외 취업ㆍ창업 지원사업) 스쿨과정을 거친 이씨는 국내에서 6개월간 하루 8시간씩 마케팅ㆍ회계 등을 배우며 미국행을 꿈꿔와 배신감은 더 컸다. 이씨는 “사무직으로 일하게 될 줄 알았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포장 작업으로 이뤄진 재고관리 일을 한다. 몸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다니던 대학에서는 ‘인턴으로 갔으니 막일도 기본으로 해야지’라는 식이어서 이를 악물며 3개월을 버텼더니 회의감만 커졌어요. 국내로 돌아가면 미국 취업 경험을 이력으로 삼고 싶었는데 배운 게 없어 그러기도 힘들 듯하네요.”
이씨는 자신뿐 아니라 많은 ‘J1비자 인턴’이 예상과 다른 일을 한다고 말했다. 그의 한 친구는 원래 예상 직무와 다르게 창고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감독기관인 스폰서 재단에 알렸다가 대행사와 마찰을 빚었다. 그는 “미국에서 한인회사가 인턴을 쓰는 이유는 육체 노동력이 비싼 미국에서 최저비용으로 몸 쓰는 일을 시키기 위해 고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인턴 생활이 불쾌한 기억으로 남은 사례도 있다. 2016년 로스앤젤레스의 한 패션회사에서 J1비자로 일했던 강보미(가명)씨는 지금도 짧았던 미국 생활을 떠올리면 진저리가 쳐진다. 강씨는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직장 동료로부터 ‘고용주가 성범죄로 고소를 당한 전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심지어 강씨 이전에 와 있던 인턴은 회사를 소개해주는 대행사에 ‘다른 인턴을 여기에 보내지 말아달라’는 부탁까지 할 정도였다. 강씨는 바로 대행사에 사정을 설명하고 회사를 옮겨달라고 말했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후 고용주는 강씨에게도 주말에 만나자고 요구하고 상담을 명목으로 불러 성희롱 발언을 했다. 결국 강씨는 가족에 도움을 청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강씨는 이러한 경험을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하며 “에이전시(대행사)에선 K-MOVE스쿨을 통해 간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내가 일정 근무기간을 채우지 않아 받지 못하는 장학금은 내돈으로 에이전시에 지급하라고 했다. 에이전시가 회사를 제대로 검증했다면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보상은 내가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밝혔다.
◇준비 안 된 인턴들로 골머리 앓기도미국 현지 회사에서 한국 인턴들을 고용할 경우 고용주는 FICA(사회보장세), 메디케어, FUTA(실업세)의 면제혜택을 받는다. 전체 임금의 약 8%에 해당하는 액수다. 여기에 건강ㆍ상해보험을 인턴 본인이 내기 때문에 보험 부담 역시 던다. 하지만 사측에서도 업무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인턴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한다.
로스앤젤레스 패션회사에서 팀장급으로 일하며 4년간 20여명의 인턴과 일해봤다는 송모씨는 “인턴들은 J1비자를 간단히 해외 경험을 쌓을 기회로 삼는 이들과 장기체류를 위한 중간 통로로 삼으려는 경우로 갈리는데, 전자는 황당할 정도로 대충 일하다가 ‘너무 힘들다’라며 한국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라며 “후자는 드물지만 열심히 일해 회사에서 취업비자(H1) 스폰서를 해 준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송씨의 회사는 끝내 J1비자 인턴 취업을 중단했다. 송씨는 “열심히 일을 가르쳐도 1년만에 나간다는 점도 힘들었고, 아무리 한인 회사여도 해외 각지를 상대하니 영어가 필수인데, 영어 이메일조차 못 보낼 정도로 기본적인 실력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해외 취업을 독려하는 입장이라고 밝힌 노동ㆍ이민전문가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J1비자가 취업비자가 아닌 ‘제한적 취업’만 가능한 문화교류 비자이기 때문에 J1비자로 해외 취업을 보낸다는 정책 자체에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설 교수는 "미국에서도 J1비자 소지자가 불법 체류자가 될 위험이 크다고 판단해 계속 장벽을 높이고 있어 이 비자를 미국 취업용도로 사용하려는 청년들의 현지 신분을 취약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며 “원칙적으로 취업이 안 되는 비자를 개개인이 뚫으려고 하다 보니 대행사가 끼고 고비용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신분 취약성을 이용해 동포 기업이나 현지 고용주에게 착취당하는 사례가 빈발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교육목적 게재함. 상호를 국가단체, 공공기관과 협업하여 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하여 광고하는 경우도 있으니, 신중하게 판단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