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유학생, 미 명문 의대 7곳 동시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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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명유학원 작성일08-04-16 09:18본문
한인여학생이 유학생들에게는 좁고도 좁다는 미국의대의 문을 일곱 군데나 통과했다. 컬럼비아대 4학년에 재학중인 양혜민 양이 그 주인공이다. 교수들이 추천서를 써 주면서도 ‘어려울 테니 큰 기대는 하지 마라’고 조언했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혜민 양은 최근 7개 의대로부터 합격소식을 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지원서를 받은 하버드, USC, 컬럼비아, 다트머스 등 최고 명문대들이 일제히 두 팔 벌려 환영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의대에 진학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유학생들에게는 그 문턱이 얼마나 가혹하리만치 높은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한 통계에 따르면 2007년 외국인 신분으로 미국의대에 합격한 학생은 175명에 불과, 전체 합격생 1만7759명의 1%에 미치지 못한다. 그중 하버드대학의 경우 2007년 6642명의 지원자중 2%에 해당한 165명 만이 합격, 그 높은 벽을 실감케 했는데 혜민 양의 경우 그 두 개의 산을 모두 거뜬히 넘어선 것이다.
혜민양의 유학생활은 한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버지니아에 있는 ‘더 커버넌트 스쿨’에 9학년 2학기 과정에 입학하면서 시작됐다.이 학교는 각 학년별로 학생수가 50여명에 불과한 아담한 학교였다. 어느정도 영어회화에 자신을 갖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부딪힌 미국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한인은 커녕 동양인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학교여서 ESL과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입학과 동시에 전과목에서 일반수업을 감당해야 했다. 교과서를 거의 외우다 시피 읽고 또 읽는 것으로 적응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미국인 홈스테이 가정에서 머물면서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고 학교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친구들도 하나 둘 늘어났다. 가끔은 너무 힘들어도 투정할 곳이 없어 서러운 마음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이겨내서 대학에 진학하고픈 열망이 번번히 앞섰다. 그리고 미국생활 3년 반 만에 아이비리그인 컬럼비아 대학에 진학함으로써 그 첫번 째 목표를 이뤄낸 셈이 됐다.
혜민 양이 의대진학을 결심하게 된 것은 대학 2학년 2학기때다. 1학년때부터 시작한 할렘에서의 봉사활동 중 이 곳 주민들에서 유난히 적혈구 관련 질환이 많이 발견되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서 발병하는 것과 똑같은 형태의 이 질환은 말라리아 예방에는 효과가 있지만 체력이 매우 저하되기 때문에 이 지역 학생들은 학교에 자주 결석할 수 밖에 없었다. 과연 아프리카 이주민들 사이에서만 이러한 질환의 발병이유가 높은 이유가 무엇인 지 궁금해졌고 부득히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을 무작정 돕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화학 전공으로 연구원을 꿈꾸던 혜민양은 보다 환자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의학으로 발길을 옮겼고 그 즉시 의대입학준비를 시작했다. 우선은 많은 연구활동경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컬럼비아 의대 연구실 문을 두드렸으나 아직 너무 어리다(연구원 보조 업무는 3~4학년에게만 주어진다)는 이유로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궁리끝에 연구원 보조 업무에 ‘봉사자’자격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보조업무에 지급되는 급료를 받지 않는 직책이기 때문에 고용기준에 관계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마침 그 당시 한국 장학금단체의 장학생을 선발돼 학비에 부담이 덜어진 것도 큰 힘이 됐다.
3학년부터는 의대준비과정 과목을 하나 둘 이수하기 시작했고 연구실에서는 봉사자가 아닌 연구보조원 자격을 얻어냈다. 결국 남들보다 연구경력이 많아진 셈이 됐다.아울러 MCAT(의대입학시험)준비도 병행했다. 서점에 나와있는 문제집을 모두 구입해 공부했고 프린스턴 리뷰에서 제공하는 시험준비반 강의도 들었다.
혜민 양은 의대준비생들에게 거의 모든 대학에서 운영하는 ‘의대준비위원회(pre-med committee)를 자주 찾을 것을 조언했다. 그 자신이 이 곳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학교성적이나 시험점수 외에도 추천서, 에세이 등의 중요성도 이 곳에서 알았다. 의대에서는 보통 3~4개 요구하지만 혜민 양은 생물 실험실 교수, 영어교수, 말라리아 수석 연구원, 전공담당 교수, 그리고 의대준비위원회의 이름으로 총 6개의 추천서를 받아냈다.
의대 심사에서는 또 인터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단순히 ‘질병을 없애서 인류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얘끼보다는 의사가 되겠다는 간절한 열망과 그 구체적인 이유를 진실된 태도로 보여줘야 한다는 위원회의 조언에 따라 혜민 양은 수차례 인터뷰 실습을 했고 실제 의대 심사위원들과 한 인터뷰에 자신감을 갖고 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유학생들에게는 좀체로 틈을 주지않는 명문 의대의 마음을 움직인 그의 의대진학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의대에서 대학교때 시작한 연구를 계속 하고 싶어요. 말라리아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전염병학 (epidemiology)에 관심이 많이 생겼는데 의사가 되어 환자가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은 의료 과학 연구를 통해 지식을 점차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생각해요. 또 전염병의 전파 과정과 치료법을 발견하고 또 전염병학은 전염병 연구 뿐만 아니라 인간의 건강에 해가 되는 많은 요인을 연구하는 분야인데 어떤 것이 정당한 연구 방법이며 분석인지에 대해 논쟁이 많은데 그 논쟁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한해에는 비타민C가 암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다음 해에는 전혀 근거없다는 결과가 나오는 데 이는 연구자들이 결과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과학연구라 해도 불분명한 요소가 항상 작용하기 때문이죠. 바로 이런 불분명한 요소를 분석 분류, 연구에 치명적인 혼동을 줄이는데 한 역할을 하고 싶어요.…”
혜민 양은 후배들에게 학교공부에만 매달리지말고 연구, 봉사활동에 깊이 있게 참여할 것과 의학에 관련된 시사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것을 조언했다. 의료제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에도 관심을 갖고 있으면 인터뷰 및 지원 에세이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다.
컬럼비아 대학 4년 간 단 한번도 A를 놓친 적이 없는 혜민 양의 GPA는 4.0. 원래도 공부가 그저 재미있었지만 이단 목표가 정해지자 더욱 힘을 내 학문에 정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머지않아 세계 의학계에 획기적인 사건을 몰고 올 그의 모습이 기대된다.
미국에서 의대에 진학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유학생들에게는 그 문턱이 얼마나 가혹하리만치 높은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한 통계에 따르면 2007년 외국인 신분으로 미국의대에 합격한 학생은 175명에 불과, 전체 합격생 1만7759명의 1%에 미치지 못한다. 그중 하버드대학의 경우 2007년 6642명의 지원자중 2%에 해당한 165명 만이 합격, 그 높은 벽을 실감케 했는데 혜민 양의 경우 그 두 개의 산을 모두 거뜬히 넘어선 것이다.
혜민양의 유학생활은 한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버지니아에 있는 ‘더 커버넌트 스쿨’에 9학년 2학기 과정에 입학하면서 시작됐다.이 학교는 각 학년별로 학생수가 50여명에 불과한 아담한 학교였다. 어느정도 영어회화에 자신을 갖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부딪힌 미국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한인은 커녕 동양인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학교여서 ESL과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입학과 동시에 전과목에서 일반수업을 감당해야 했다. 교과서를 거의 외우다 시피 읽고 또 읽는 것으로 적응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미국인 홈스테이 가정에서 머물면서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고 학교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친구들도 하나 둘 늘어났다. 가끔은 너무 힘들어도 투정할 곳이 없어 서러운 마음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이겨내서 대학에 진학하고픈 열망이 번번히 앞섰다. 그리고 미국생활 3년 반 만에 아이비리그인 컬럼비아 대학에 진학함으로써 그 첫번 째 목표를 이뤄낸 셈이 됐다.
혜민 양이 의대진학을 결심하게 된 것은 대학 2학년 2학기때다. 1학년때부터 시작한 할렘에서의 봉사활동 중 이 곳 주민들에서 유난히 적혈구 관련 질환이 많이 발견되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서 발병하는 것과 똑같은 형태의 이 질환은 말라리아 예방에는 효과가 있지만 체력이 매우 저하되기 때문에 이 지역 학생들은 학교에 자주 결석할 수 밖에 없었다. 과연 아프리카 이주민들 사이에서만 이러한 질환의 발병이유가 높은 이유가 무엇인 지 궁금해졌고 부득히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을 무작정 돕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화학 전공으로 연구원을 꿈꾸던 혜민양은 보다 환자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의학으로 발길을 옮겼고 그 즉시 의대입학준비를 시작했다. 우선은 많은 연구활동경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컬럼비아 의대 연구실 문을 두드렸으나 아직 너무 어리다(연구원 보조 업무는 3~4학년에게만 주어진다)는 이유로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궁리끝에 연구원 보조 업무에 ‘봉사자’자격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보조업무에 지급되는 급료를 받지 않는 직책이기 때문에 고용기준에 관계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마침 그 당시 한국 장학금단체의 장학생을 선발돼 학비에 부담이 덜어진 것도 큰 힘이 됐다.
3학년부터는 의대준비과정 과목을 하나 둘 이수하기 시작했고 연구실에서는 봉사자가 아닌 연구보조원 자격을 얻어냈다. 결국 남들보다 연구경력이 많아진 셈이 됐다.아울러 MCAT(의대입학시험)준비도 병행했다. 서점에 나와있는 문제집을 모두 구입해 공부했고 프린스턴 리뷰에서 제공하는 시험준비반 강의도 들었다.
혜민 양은 의대준비생들에게 거의 모든 대학에서 운영하는 ‘의대준비위원회(pre-med committee)를 자주 찾을 것을 조언했다. 그 자신이 이 곳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학교성적이나 시험점수 외에도 추천서, 에세이 등의 중요성도 이 곳에서 알았다. 의대에서는 보통 3~4개 요구하지만 혜민 양은 생물 실험실 교수, 영어교수, 말라리아 수석 연구원, 전공담당 교수, 그리고 의대준비위원회의 이름으로 총 6개의 추천서를 받아냈다.
의대 심사에서는 또 인터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단순히 ‘질병을 없애서 인류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얘끼보다는 의사가 되겠다는 간절한 열망과 그 구체적인 이유를 진실된 태도로 보여줘야 한다는 위원회의 조언에 따라 혜민 양은 수차례 인터뷰 실습을 했고 실제 의대 심사위원들과 한 인터뷰에 자신감을 갖고 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유학생들에게는 좀체로 틈을 주지않는 명문 의대의 마음을 움직인 그의 의대진학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의대에서 대학교때 시작한 연구를 계속 하고 싶어요. 말라리아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전염병학 (epidemiology)에 관심이 많이 생겼는데 의사가 되어 환자가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은 의료 과학 연구를 통해 지식을 점차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생각해요. 또 전염병의 전파 과정과 치료법을 발견하고 또 전염병학은 전염병 연구 뿐만 아니라 인간의 건강에 해가 되는 많은 요인을 연구하는 분야인데 어떤 것이 정당한 연구 방법이며 분석인지에 대해 논쟁이 많은데 그 논쟁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한해에는 비타민C가 암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다음 해에는 전혀 근거없다는 결과가 나오는 데 이는 연구자들이 결과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과학연구라 해도 불분명한 요소가 항상 작용하기 때문이죠. 바로 이런 불분명한 요소를 분석 분류, 연구에 치명적인 혼동을 줄이는데 한 역할을 하고 싶어요.…”
혜민 양은 후배들에게 학교공부에만 매달리지말고 연구, 봉사활동에 깊이 있게 참여할 것과 의학에 관련된 시사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것을 조언했다. 의료제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에도 관심을 갖고 있으면 인터뷰 및 지원 에세이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다.
컬럼비아 대학 4년 간 단 한번도 A를 놓친 적이 없는 혜민 양의 GPA는 4.0. 원래도 공부가 그저 재미있었지만 이단 목표가 정해지자 더욱 힘을 내 학문에 정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머지않아 세계 의학계에 획기적인 사건을 몰고 올 그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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